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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연구의 성과와 과제

제주학 연구의 성과와 과제 조 성 윤

1.지역 연구로서의 제주학

제주학이라는 명칭은 약 2년쯤 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 내에서 행정 단위의 지역 사회를 학(學, science)의 대상으로 삼는 명명법은 1993년 서울정도 600주년 기념사업으로 [서울학 연구소]가 생기면서 '서울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 처음일텐데, 그것이 확산되어 이제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이런 명명법을 사용하고 있다(안두순, 1994).
물론 이것은 지방자치 실시가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다. 지역이라는 특정 대상을 중심으로 학문이 성립되는 것은 매우 낯선 현상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가 그 동안 지역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거의 없었고, 또 그런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고민해본 적인 별로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지역에 대한 연구 관심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그 전에는 주로 중앙 과 지방 구분법 만이 유효했다(조성윤,1994). 물론 대부분의 연구 인력과 그들의 관심은 중앙에 집중되어 있었다.
반면 지방의 연구는 중앙과의 대비 속에서 지방을 파악하기 위해서 수행되었을 뿐이다. 좀더 심하게 말하면 중앙의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지방의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려는 의도가 가장 일차적인 것이었으며, 연구 결과 역시 중앙에 축적되어 왔다.
향토사 연구 등을 통해 지방주민이 주체가 된 연구가 일부 있었지만, 이는 전체 지역 연구의 극히 일부에 해당될 뿐이었다. 사실 지역사회란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 구분된 경계를 따라 이루어진 단위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 지역을 준거집단(reference group) 으로 삼는 상징적 공동체(imagined community)를 뜻하기도 한다. 물론 제주도는 지리적으로 다른 지역과는 완전히 구별된 섬 지역인 동시에, 지역 거주민들 간의 내적 우리 의식도 상당히 강한 편이다.
때문에 행정적 지리적 경계가 자주 바뀐 다른 지역에 비하면 지역 사회의 의미가 분명한 편이다. 그렇더라도 제주학 연구가 단순한 지리적 행정적 단위로서의 지역에 관한 연구만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중앙의 통치 목적에 부합하는 연구로 또다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주체의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하며, 지역 사회의 의미를 후자를 중심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고 지역 주민들의 공동 이익 실현을 분명히 지역학 연구의 목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사람이라고 할 때 어떤 사람을 포함하는가 ? 本籍이 기준인가 ? 아니면 주민등록상의 주소가 기준인가 ? 또 몇 년 이상을 살아야 제주인이라 할 수 있을까 ? 이런 점을 고려하면 쉽게 대답할 수 없게 된다. 그래도 잠정적으로 기준을 정해 보면 제주인이란 제주도라는 섬지역에 현재 거주하고 있거나 또는 떠나 살면서도 제주도를 고향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일단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제주인의 정체성(identity)이 중요하다. 이 발표에서는 제주학을 지역적인 단위 안에서 삶을 공유하는 제주인이 중심이 되어 제주인에 의해 제주 지역사회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연구를 가리킨다고 전제하고 논의를 시작해 보기로 한다.


 

2.제주학 연구의 성과

제주학 연구는 서울에 거주하는 민간 연구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 민속학, 국문학, 고고학, 인류학 전공자들이 모여 1978년 봄 濟州島硏究會를 창립하였다. 당시 창립 멤버들은 제주도가 한국 지역 사회 중에서 가장 독특한 곳이기 때문에 연구할 거리가 많은 "지역 연구의 寶庫이자, 표본 사회로서의 (인문사회분야의) 학술적 가치(장주근, 1984: 8)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당시 서울에 있던 제주도 출신 학자들과 제주 지역의 연구자들은 제주지역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를 싫어했었다고 한다.
전경수는 그 이유를 "'연구대상'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불쾌하게 생각했던 제주 출신 인사들의 이유는 지극히 문화적인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외없이 누군가에 의해서 관찰되는 것을 싫어한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 자체가 싫은 것이다. 쳐다본다는 문화적인 행위 자체를 반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집단을 이루어서 나를 또는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에 지배되어 연구회 결성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라고 진단하였다(전경수, 1998).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모든 학문은 중앙의 학자들 몫이었고, 연구 성과로서 관찰 결과가 중앙에 쌓이고, 그것이 다시 통치 자료로 활용된다면 통치 대상인 지방민으로서는 반가울 리 없었다. 게다가 서울에 올라와 사는 제주도민들의 상당수가 자신의 고향을 가능 하면 감추려 했었고, 심지어는 본적을 서울로 옮겨다 놓기까지 했었던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1980년대로 들어오면서 바뀌기 시작하였다. 기존의 제주도 연구회는 1984년부터 폭을 넓혀 제주도내의 학자들과 협력하여 조직을 확대 개편하였으며, 본격적인 전국 학술대회를 서울과 제주에서 번갈아 개최하게 되었다.
새로 참여한 회원들은 제주도내의 대학 교수들과 전국에 흩어져 있는 제주도 출신 학자들이었으며, 인문 사회 자연 과학을 모두 포괄하였다. 여기에 지역의 향토사연구자들까지도 끌어들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일부러 제2회 대회의 주제도 "濟州道島史의 再照明"으로 정했고, 이 때부터 여러 학교 밖의 연구자들도 참석하게 되었다.
물론 중심은 여전히 민속학, 문화인류학, 국문학 분야의 서울 학자들이었지만,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제주도에 대한 연구가 제주도에 관심을 갖는 전국의 모든 학자들에게로 확대되면서, 인문 사회 자연의 모든 학문 분야를 포괄하는 것으로 범위를 넓히게 되었다.
전국학술대회 때는 자연과학 분야의 세미나가 함께 열렸는데, 그 자리에서는 전문적이고 세부적인 실험 결과를 다룬 논문이 아닌 리뷰 논문들이 주로 발표되었다. 보기를 들면 한라산의 식물 분포, 제주도 내 화산 분포와 특징, 해양 식물, 제주도 토양의 특성, 등등. 참여한 학자들의 절반 이상이 인문 사회과학자들이었으며, 그들은 그들과 관심사에 따른 질문을 퍼부었다. 그들로서는 내가 사는 고장의 자연과학적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참여 자체를 보람있게 여기는 분위기가 만들어 졌다.
전국학술대회에는 현지 답사도 포함되었다. 보기를 들면 이미 조성된 성읍 민속촌과 새로 조성되고 있던 표선 민속촌을 둘러보고, 함께 민속촌의 의미에 대해 토론을 하거나, 성산포 지역을 둘러보면서 그 지역이 갖는 화산지형의 특성과 그 일대에 자생하고 있는 식물의 분포를 지질학자와 식물학자가 인문 사회과학자들에게 설명하고, 함께 이해의 폭을 넓혔다.
이처럼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분야의 상호 이해를 위한 노력이 활발해졌지만, 인문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상호 교류와 토론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외형적으로 협력의 움직임을 보였던 인문 사회과학 분야와 자연과학 분야의 학자들의 토론 분위기는 1990년대 초반부터 다시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학회의 중심은 여전히 향토사 민속학 인류학 국문학 분야였으며, 이들이 몇 개의 작은 단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관심은 향토사 분야로서 향토사학자들과 지역대학의 한국사 관련 전공자들이 모여 濟州島史硏究會가 결성하였다. 이들은 지역에 관련 사료가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 규장각 등 서울 지역에 소장되어 있는 제주 관련 자료들을 복사해오고 함께 윤독회를 가지는 한편, 그 성과를 [제주도사연구]로 모아 펴내현재 6집이 발간되었고, 얼마 전에는 {19세기 제주사회연구}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한편 무속, 방언, 설화 등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도 독자적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무속은 제주도 무당이 갖는 독특한 성격 때문에 주목되었다. 3-4년전부터 민속학, 국문학 분야를 중심으로 [제주학 연구소]라는 현지 조사를 중요시하는 단체가 따로 만들어져 활동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기존의 제주도연구회 회원이라는 점에 있었다. 제주도연구회라는 학회의 틀 속에서의 협력 활동보다는 독자적 활동에 더 비중을 두게 된 것이다. 자기 분야 사람들끼리 모여야 훨씬 더 심도 있는 학문적 성과를 쌓을 수 있다는 점은 공감하면서도 상호 교류와 공동 연구의 분위기가 점차 약 해지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편 개인들의 독자적 활동도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제주 지역은 특히 마을이 하나의 단위 조직으로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시되어 왔다. 때문에 조선시대 내내 현(縣)은 중요한 역할에서 많은 부분 배제되었으며, 대체로 제주목(牧)의 행정 체계가 직접 마을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점에 주목하여 오성찬은 지역마을을 종합적으로 조사한 시리즈를 100권을 내겠다고 기획하여 1년에 약 2권 정도씩 15개 마을을 조사한 결과를 각각 단행본으로 출간했으나 재정 부족에 부딪쳐 중단한 상태이다.
한편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는 지역개발이 활성화되면서 관광개발 분야를 중심으로 활성화되었다. 말을 바꾸면 제주도의 사회과학은 관광개발이 다른 지역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에 발 맞추어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일찍부터 등장하였다. 1986년에 열렸던 제주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주최한 [제주도와 하와이간의 도서지역개발협력 세미나]는 그 대표적인 보기였다. 그 뒤 제주도와 비슷한 세계 다른 지역의 개발 경험을 가져와 그것을 토대로 제주 지역 개발의 모델을 설정해 보려는 활동은 계속 이어졌다.
한편 제주도연구는 현재 15집이 발간된 상태인데, 자연과학자들의 참여는 1990년대 초부터 줄어들기 시작하여 지난 4-5년간은 단 한편의 연구도 실리지 않은 채 인문 사회과학 논문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전국대회 때도 자연과학자들의 참여는 눈에 띠게 줄어들었다. 때문에 현재는 지역 연구는 주로 인문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문제를 토론하고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이 1996년도부터 활성되면서 1997년 제주도 연구회는 '제주학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명칭이 바뀌었다고 하루 아침에 내용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의미를 담고 인문사회과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이 좀더 깊이 있는 상호 교류를 하기로 했다. 우선 그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1999년도 부터는 학회지를 연2회로 늘리고, 자연과학자들이 제주도 자연 현상을 다룬 리뷰 논문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1997년에 제주발전연구원이 만들어졌는데, 이를 위해 제주도와 제주시 서귀포시 북제주군 남제주군이 각각 기금을 출연하였다. 지방자치 시대를 맞이하여 전국 각지에서 연구원을 만들 때 제주도에서도 만든 것이다. 연구원은 제주도에서는 최초로 지방정부가 제주도에 관한 연구를 학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구로 인식되었고, 따라서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
연구원은 첫해 종합적으로 제주도에 관한 기존 연구를 점검하고 이를 중국, 일본 등의 다른 섬들과 교류하는 세계섬학술회의를 의욕적으로 개최하였다. 이틀에 걸쳐 8개의 분야별 토론이 진행되었는데, 절반은 제주도와 국내 다른 지역 학자들이 참가한 제주도의 문화, 관광, 산업구조 등의 주제를 다루었고, 일본,중국,미국, 캐나다 등 다른 지역의 섬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모여 '섬연대를 위한 과학 지식의 공유' 모임을 가졌다. 이러한 학술회의는 제주지역을 단순한 한국사회의 일부로만 인식하는 틀을 넘어서서 섬이라는 독자적 단위를 중심으로 새로운 모색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작업이 연속 사업으로 진행되지 않고 일회성을 끝나버릴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매우 높으며, 따라서 과시적 행사로 그쳤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제주발전연구원은 행정당국이 재정을 지원하는 제주지역 연구기관으로서는 유일한 것이지만, 문제는 이 연구원이 독자적으로 연구 구상을 설정하고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우선 지방행정기구의 주요 과제인 관광과 감귤산업이 주요 연구 테마로 잡고 있는 것은 당연 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제를 연구원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환경이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연구과제를 준 출연기관의 국실장들은 물론 과장 심지어는 계장들까지도 수시로 연구원에 연구진들에게 자신들이 필요로는 각종 자료를 뽑아달라고 요청하는가 하면, 각종 시시콜콜한 부분들을 보고서로 작성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업무가 지정된 연구 과제를 수행하기위해 필요한 시간 보다 훨씬 더 많을 때도 있다. 이 때문에 연구원이 독자적으로 제주 지역이 당면한 문제가 무었이며, 제주 지역의 장래를 위해 어떤 연구 과제를 새로 개발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할 여유가 전혀 없다. 뿐만 아니라 연구를 수행해 보면 경우에 따라 현재의 행정당국이 취하고 있는 정책 방향 입장과 다소 다른, 나아가 상반된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상반된 입장은 비공식적으로 전달될 수는 있지만, 이를 공식 보고서로 내놓는 것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말하자면 제주발전연구원의 연구원들은 대체로 행정당국자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따라서 현 상황이 그대로 유지되는 한 연구원의 연구 인력이 제주학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겠다.


 

3.제주학 연구의 과제

1. 연구 방법상의 문제 : 위에서 지적했듯이 제주지역을 대상으로 한 학문적 연구는 주요 목표를 인문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간의 상호 교류와 공동 연구로 삼았고, 이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임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된 이러한 노력은 인문과학 분야와 사회과학 분야 사이에는 나름대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지역의 최소 단위인 마을 연구를 위해 고고, 인류, 언어, 사회학, 역사학자들이 상호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공동 연구를 진행한다거나, 관광 산업연구에서 국문학, 역사학, 사회학자들이 역사 문화관광이라는 주제를 놓고 함께 토론하는 경우 등이 자주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자연과학분야와의 교류는 결코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렇더라도 각 분야 마다의 개별 분산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연구를 넘어서서 공동 연구의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그럴 때에만 지역학은 통합과학으로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최근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는 부분으로 해양 연구가 있다.


2. 해양 연구의 필요성 : 최근 한일어업협정에서 보듯이 바다를 둘러싼 분쟁이 일어날 때 어민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그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그 문제에 적절한 협상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학자들도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는 점이 제주학 연구자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제주대학에는 해양대학이 단과대학으로 독립해 있다. 또 실습선으로 1천톤이 넘는 배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해양대학 안에는 증식학과, 해양환경공학과, 선박기관공학과 등 전적으로 자연과학 분야로 취급되는 학과만이 존재하며, 모든 교수가 자연과학 전공자들이다. 주로 다루는 내용도 해양 수산 자원을 연구하는 것과 양식업 관련 학문, 그리고 배를 만들고 타고 다니면서 어로 활동을 하는 기술을 습득하는데 중점이 놓여 있다.
최근들어 제주도에서 새롭게 등장한 것이 "海民精神"이었다. 바다를 무대로 살아온 강인한 제주도 海民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캐치 프레이즈이다.
하지만 최근 논의에서는 자연과학 지식만 가지고는 바다를 무대로하는 제주인의 삶이란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점이 자주 지적되고 있다.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어민들의 생활, 그들의 공동체, 그리고 어민들의 경제 활동에 대한 연구는 사실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사회학의 입장에서 가장 먼저 관심이 가는 것은 어민들과 그들의 공동체이다. 말하자면 어민들이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어떻게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가, 또 그들에게는 어떤 현실적 장벽이 놓여 있으며, 그 해결책은 무었인가 등등이다.
최근 해양학자들과 사회학자들 사이에서는 해양 환경 문제를 대중에게 교육하고 해안의 환경과 자원을 지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지만, 이는 문제를 자각한 일부 연구자들의 시작을 알리는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3. 제주도 개발정책과 미래 : 자본주의로 편입되기 전 제주도는 고립된 '척박한 자연환경'으로 '유배지'로서 알려진 지역이었으나, 국토개발을 통한 국가와 자본의 공간적 분업은 제주도를 버려진 땅에서 '개발잠재력이 풍부한 곳'으로 변화시켰다.그 결과 제주의 지역개발은 '관광개발'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제주도의 관광개발은 섬이라는 자연적 환경적 특성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개발이 주로 국가ㆍ행정당국과 자본가들에 의해 계획되고 시행되면서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주민들은 개발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관광개발이 자본의 논리에 따라 지역공동체에 대한 배려없이 무차별적으로 온 섬에 걸쳐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연환경의 파괴가 심각해지고, 주민들의 불만은 점차 커져 갔다.
그러나 사회의 민주화가 진행되고, 지방자치 실시되면서 지역주민운동은 폭발적으로 터져나왔고, 최근까지 50여건을 넘어서고 있다(부만근, 1997). 이러한 지역 주민운동의 활성화는 수동적으로 관광개발을 지켜보던 주민들로 하여금 관광개발과정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생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시키려는 의식의 변화로 이어지는 한편, 제주지역사회를 새롭게 탈바꿈시켰다(조성윤, 1995). 1990년도 [제주도 개발특별법] 당시의 엄청난 주민운동이 있었고, 최근에는 도당국이 추진하는 500만평 규모의 메가리조트 건설계획, 케이블카 설치계획, 카지노설치계획 등이 대부분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있다.
학계에서는 이런 문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대부분 도당국이 제안한 정책을 분석 평가하고, 반대 의견을 내는 정도에 그치고 있으며,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은 아직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올해 들어와 역사·문화관광, 생태관광, 걷기 편한 도시 등 여러 가지 대안을 모색하는 프로젝트가 인문 사회 자연과학 자들의 공동 작업으로 진행되기 시작했으며, 이런 노력이 성과를 보이게 된다면, 제주학 연구도 나름대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들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도당국의 현재의 정책 방향과 대립하는 것으로 도당국의 자문역을 담당하는 학자들과의 상반된 견해 대립도 예상된다.


 

4.맺는말

제주도는 섬이라는 지역 특성상 연구 단위로서의 경계가 비교적 분명하고 또 주민들의 정체성도 강한 편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도 일찍이 연구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제주 지역 학자들에 의한 제주도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목적을 갖는 연구 작업은 불과 10여년 밖에 되지 않고, 따라서 이제 시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연구 주제는 과거 향토사를 연구하고, 방언, 전설, 민요 등을 수집 정리하는 작업의 범위에서 벗어나 지역 현안인 관광 개발 문제와 환경 문제, 그리고 해양 수산업과 관련된 연구 과제 등으로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인문 사회과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의 상호 교류와 협력의 가능성도 조금씩 높아져 가고 있다. 한라산과 해안 보호 등 생태계 보호 문제, 그리고 해양 수산업 문제와 관련해서 사회과학자들과 자연과학자 들 간의 토론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보기이다.
한편 한 번 밖에 기회가 없었지만, 국제 교류를 시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주도의 학자들은 한국사회라는 틀을 넘어서서 섬이 갖는 특성을 다른 세계 여러 지역의 섬들과 공유하면서 새로운 연구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교류를 활성화하고 다른 나라 섬지역의 연구 성과를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할지는 아직도 모색 단계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전국적으로 지방자치가 활성화되고 있는 요즘 다른 지역 보다 일찌기 지역 개발을 추진했던 제주도에서는 빠른 속도의 지역 개발이 환경을 급속히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음을 우려하고,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개발 대안 또는 모델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이 점이 제주학 연구가 현재 당면한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하며, 이를 위해 여러 학문간의 협력이 얼마나 이루어지는가 하는 점이 제주학의 미래 뿐만 아니라 제주인, 제주사회의 미래와 관련해서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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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9